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가정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수업이 적은 가정이 꼭 불행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부부 상담 프로그램을 보면 이혼 직전까지 가는 부부 간 갈등의 큰 이유 중 하나가 ‘돈’ 문제이다.
집안의 가장이 수입이 너무 적거나 수입보다 지출이 많기도 하고, 부부간 모르는 빚이 드러나기도 하고, 서로의 씀씀이를 알 수 없으며, 적은 수입 자체를 불행의 원인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가정의 행복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른바 이혼 전문 변호사가 소개하는 ‘경제적 이유로 이혼한 사례’를 보면 ‘부채’, ‘경제적 무능력’, ‘소비의 차이’, ‘생활비 압박’ 등의 이유가 있는데 아무리 돈이 부부간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고 해도 가정의 안정된 삶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양대학교 웰다잉 연구소(연구소장 병원경영학과 김광환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2020년부터 ‘개인의 전 생애적 주기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화를 돕고, 전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웰에이징 연구를 진행해 왔다. 연구주제는 정신과 육체의 건강부터 노인복지, 경제문제 해소 방안, 죽음 준비, 가족관계 등이다. 2025년에는 웰에이징 연구의 하나로 ‘부부의 경제문제’를 주제로 삼아 설문조사를 통해 경제문제에 대한 국민의 기초적인 인식조사를 시작하였다.
우선 부부의 경제생활에 있어 ‘나와 배우자의 돈 사용에 있어 동등한 권리 행사’와 ‘부부 수입의 공동 사용 여부’, ‘금전적 문제로 갈등을 빚을 경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어난 문제 등에 대해 알고자 한국여론리서치의 도움으로 만 19세 이상, 만 69세 이하의 기혼 남녀 1,200명에게 관련된 질문을 하고 그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충분히 예상했던 것도 있었지만 의외의 결과도 있었다.
우선 ‘나와 배우자의 돈 사용에 있어 동등한 권리 행사’를 묻는 항목에서 ‘그렇다’라는 대답이 64.9%, ‘보통 내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도 35.1%였다. 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부부가 서로 의논하여 지출했지만 부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사례도 상당했다. 실제 돈 문제로 갈등을 빚거나 이혼까지 이르는 부부가 엄청나게 많다고 볼 수는 없지만 35.1%에 속하는 부부는 그러한 갈등 요인을 안고 살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는 수치로 보인다. ‘부부 수입의 공동 사용 여부’를 묻는 항목에 대해서는 ‘그렇다’가 55.3%였고 ‘그렇지 않다’가 31.3%로 조사되었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많은 부부가 수입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상당한 것을 보면 이는 부부 간 갈등 요인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 주변의 사례를 보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맞벌이 부부이거나, 사업을 하는 경우, 상당히 늦게 결혼하여 서로의 지출 습관에 익숙해진 경우 부부 어느 한쪽이 수입을 ‘틀어쥐고’ 있기도 하다.
‘부부가 돈이나 부에 대해 가치관이 비슷한가?’를 묻는 항목의 조사 결과도 흥미로웠다. 조사 결과 ‘그렇다’라는 대답이 48.3%, ‘보통이다’가 27.7%, ‘그렇지 않다’가 24.1%였다. 부부가 돈이나 부에 대해 가치관이 다를 경우 부부 생활에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부부 한 사람의 주식과 같은 투자에 대한 지나친 몰입, 과할 정도의 사치와 소비생활, 저축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등은 단순히 삶의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부부 생활의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금전 문제가 경제적 결핍으로 이어지는 결과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았다. 35.8%의 부부가 ‘금전적인 문제로 배우자와 다툰 적이 있고’, 35.9%의 부부는 ‘금전적인 문제로 보험을 해약한 적이 있으며’, ‘금전적인 문제로 재산을 처분한 사례도’ 27.1%에 달했다. 큰 차이는 없지만 이상의 경제적 갈등에 대해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큰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가정의 실질적인 장바구니 경제를 여성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 결핍’의 결과 역시 여성이 감당하는 사례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결혼생활 만족도와 부부의 경제생활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기혼자 대부분은 ‘돈 사용에 있어 동등한 권리 행사’와 ‘부부 수입의 공동 사용’, ‘돈이나 부의 가치에 대한 동등한 생각’ 등이 만족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반면에 ‘금전 문제로 인한 다툼’과 ‘대출과 보험 해약’ 등의 경제적 궁핍을 경험했을 때 결혼생활의 만족도도 크게 떨어졌다.
대인관계에서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간 돈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부간 행복에 있어 돈이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한 집안의 수입과 지출은 부부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서로 책임을 나눌 때 결혼생활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다.
출처: http://www.knpp.co.kr/news/332637